2025.03.11 (화)
큐레이터 포미
출근길 정장 대신 한 치수 큰 교복을 입던 시절.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는 대신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학교로 향하던 시절.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피카츄 모양의 돈까스를 사 먹던 시절. 여러분에게는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나요? 장르도, 국적도, 분위기도 제각각이지만 "그때 그 시절"이라는 이름 아래 묶일 수 있는 영화들. 어떤 영화들이 있을까요?
"사람은 서른 이전에 들었던 음악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듣는다." 김영하 작가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에요. 음악뿐만이 아니죠. 영화, 음식, 책,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 사람은 서른 이전의 취향을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한창 감성이 말랑말랑한 시절의 십 대, 그리고 비로소 세상을 온몸으로 겪어보며 점차 단단해지는 이십 대가 녹아 있는 취향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그때 그 시절"에는 어떤 영화들이 우리와 함께했는지, 가볍게 돌아볼까요?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정하고 싶다." SNS에서 감성적인 글귀를 찾아 헤매다 보면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대사일 거예요. 바로 1994년에 개봉한 홍콩 영화 <중경삼림>에서 독백으로 읊조리는 대사죠. 소위 말하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다소 오글거리게 들릴 수도 있는 대사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더없이 멋지고 낭만적인 대사였어요.
어디 그뿐만이었던가요. 실연을 겪을 때마다 조깅을 하며 눈물 대신 땀을 흘리는 사내. 헤어진 연인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며 방 안의 물건들에게 말을 거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냅킨에 비행기표를 그려주며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고 묻는 여자와,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라고 대답하는 남자. 그런 두 사람을 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영화 <중경삼림>에는 "그때 그 시절"의 영화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성들이 가득했죠.
2023년의 최고 화제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역을 맡았던 양자경. 마블 시리즈의 <샹치>에 출연하여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은 존재감을 뽐낸 양조위. 잊을 만하면 영화 채널에서 틀어주는 <소림 축구>나 <쿵푸 허슬>로 유명한 주성치. 쌍권총, 트렌치코트,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였던 주윤발. 지금도 변함없이 스크린 속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씬을 보여주는 그들이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우리의 추억이 가미된 탓인지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기 마련이에요.
조금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천녀유혼>에서 왕조현이 보여줬던 미모는 그 당시 남학생들을 밤잠 설치게 만들 정도였죠. 당시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장국영의 외모는 지금도 우리를 여학생들처럼 설레게 하죠. 이제는 세월이 흐른 만큼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볼 수 있지만,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만큼은 그들은 영원히 우리들의 "그때 그 시절" 속 추억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추억.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기는커녕 더욱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추억.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저녁에는 한번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을 꺼내며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덥혀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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