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프로혼밥러가 직접 가봤습니다, 응암역 식당 5곳

큐레이터 불광천왕수달

2024.06.04 18:14

혼자 느긋하게 밥 먹고 싶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밥 먹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만 주문해서 돼지처럼 먹고 싶다, 밥 먹을 때도 일 얘기만 하는 팀장이랑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다…… 이 모든 욕망들을 함축하여 우리 사회는 ‘혼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혼밥,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매장에 손님이 많을수록 난이도가 직관적으로 상승한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앉는 건 제법 용기가 필요하고, 어쩌다 4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으면 괜히 사장님 눈치가 보인다. 사람들은 나 따윌 전혀 의식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쓸데없이 사람들을 의식하기 바쁘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냈다. ‘혼밥’의 조건을 알맞게 갖춘 식당들을.


1. 청년식당

언제부터인가 이름에 ‘청년’이 들어가는 점포는 믿고 거르라는 말이 퍼져 있으나, 여긴 다르다. 4개의 점포가 임접한 푸드코트로, 은평구청의 지원을 받는 ‘청년’ 사장님들이 운영하고 계신다. 주요 메뉴는 순살 닭도리 정식, 우렁 제육쌈정식, 얼큰 애호박국밥, 샐러드 같은 하와이 전통 음식 포케 등이 있다.

어떤 메뉴를 주문하든 1인용 쟁반에 정갈하게 담긴 채로 테이블까지 서빙된다. 순살 닭도리 정식을 주문했더니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힌 안내문이 꽂혀 있었다. 안내문에 적힌 내용대로 남은 양념에 밥까지 싹싹 비벼서 먹어치웠다. 가격을 생각해보면 더욱 배부르고 은혜롭게 느껴지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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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HO358

베트남 현지인이 직접 요리하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메뉴판을 보기에 앞서 한쪽 벽면에 진열되어 있는 식자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포장지에 적힌 외국어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신뢰도가 상승했다.

한 박자 늦게 메뉴판을 살펴보니 소고기 쌀국수가 라지 사이즈로 8,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 주문을 기다리는 사장님들의 눈빛에선 걸크러시마저 느껴진다. 이윽고 테이블에 오르는 쌀국수는 고명이 수북하다. 한 젓가락 집을 때마다 면발과 함께 소고기, 양파, 콩나물이 가득 딸려온다. 라지 사이즈로 시켰음에도 양이 두 배가 아닌 네 배로 담겨 나온 느낌이다. 콧등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국물까지 떠먹었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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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레텐

튀김이 많아봤자 이 가격에 얼마나 많겠어, 라는 생각에 얕보았다가 당하고 말았다. 아침을 건너뛴 공복 상태였기에 텐동과 미니우동 세트를 시켰다. 평일 점심에는 2,000원을 할인해 준다는 문구도 선택에 한몫했다. 단돈 만 원에 텐동과 미니우동이라는데, 다른 메뉴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카운터 너머에서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가 허기를 자극했다. 미니우동이 먼저 나왔다. 입가심으로 유부만 건져서 먹고 있는데 텐동이 나왔다. 순간 메뉴를 잘못 시킨 줄 알았다. 양이 이렇게 많다고? 빈 접시에 튀김만 따로 담아냈는데도 밥 또한 양이 넉넉하다. 튀김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람은 하레텐의 텐동부터 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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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소네식당

가게 안으로 들어갔더니 때마침 나 말고 혼밥 중인 사람이 있었다. 키오스크도 보였다. 누가 봐도 혼밥하기 좋은 곳이란 증거다. 키오스크 속 메뉴판에는 인기 메뉴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육회 연어 덮밥이 눈에 들어왔다. 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지만 육회랑 연어가 들어간다니까, 오히려 저렴한 게 아닌가 싶었다.

쟁반에 담겨 테이블로 올라온 덮밥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이 정도 양은 덮밥이라 할 수 없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식 비빔밥이라고 해야 한다. 초장이 함께 나왔으나 참기름만으로도 비벼먹기엔 충분하다. 맛있는 걸 먹을 때는 핸드폰조차 꺼내지 않고 밥만 먹는 습관이 있다. 미소네식당에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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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돈부리돈

메뉴판만 보고 안에 들어갔다가 당황했다. 여긴 일반 일식당이 아니라 이자카야였다.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곧장 나가려는데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대문자 I형이다. 차마 잘못 들어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메뉴판에는 식사 메뉴가 따로 있었다. 일단 가츠동을 주문했고, 양이 부족할 거란 생각에 새우튀김 4P짜리도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점심을 이토록 배불리 먹으면 분명 식곤증으로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부디 사장님 눈에는 음식을 남기기 싫어서 억지로 먹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점심 시간의 이자카야를 혼자 사용하다시피 하는 식사는 참으로 느긋하고 배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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