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눈물 한 방울, 카페 포크 탐방기 - 구산역 카페 포크

큐레이터 문혜영

2024.06.27 14:56

빛과 채가 없고 화려한 도시 서울. 김해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을 만큼 먼 곳을 본향으로 두고 있는 나에게는 몇 가지 이해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카드를 한 번 더 찍어야 추가요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 적어도 같은 동, 같은 골목에 살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수도권 곳곳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없다는 것. 이 모든 것들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도 어느새 색을 잃어갔다.

졸업 후에는 그동안 올라버린 월세가 부담스러워 옆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그곳이 바로 은평구다. 산책하기 좋은 불광천을 목전에 두고 있고 이마트나 올리브영 같은 편의시설도 가까워서 좋았는데, 이상하게 색 없는 내 모습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빈 시간들을 채우려고 한다. 좋아하는 취향의 카페에 가서 조용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나무가 가진 고유의 질감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일부러라도 그런 카페만 찾아가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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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내 자신을 가장 채워주는 곳으로는 「카페 포크」가 있다. 역시 내 취향의 카페라는걸 보여주듯이 카페 전체가 나무 질감의 가구로 채워져 있는 곳, 또 정말 멋있게 나이드신 사장님께서 내려주시는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으로도 알려져 있다(타카히로 키노시타를 닮으신 것 같기도 하다). 가격대와 취향에 따라 골라볼 수 있는 핸드드립 커피에서부터 유자차, 밀크티 등 논커피 메뉴까지 종류가 다양해 주말엔 만석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은 가볍게 아메리카노나 따뜻한 차를 주문해왔지만 오늘은 게이샤 커피에 케이크까지 주문했다. 사회 초년생 월급에 혼자서 13,000원이나 카페 비용으로 지불하다니, 그래도 내 마음이 배부르니까 만족한다.

아기자기한 앤티크 가구도 있고 조금 더 아늑한 구석 자리도 있지만 나는 주로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쪽에 앉는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나무 바닥, 요즘엔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바닥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티라미수는 직접 만드시는 것인지 커팅도 플레이팅도 거칠어 보였지만 제법 달달하다. 나는 단맛을 정말로 싫어했지만 티라미수를 먹으면서 나의 빈 공간과 사라진 색이 채워지는 걸 느꼈다. 나는 티라미수를 좋아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바쁘고 비싸고 살찐다는 걸 핑계로 먹지도 못했구나.

사회가 추워서, 혹은 원래 그랬어서. 그런 핑계를 자신 있게 대면서 사라져가는 내 취향을 잡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상실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나를 챙겨주어야지. 그래서인지 마음이 복잡해지면 이곳으로 발길을 서두른다. 문득 깨달아버린 내 마음과도 같이 평소보다 더 많은 카페인이 폐에도 번지는 것 같다. 다음엔 꼭 차를 마셔야겠다.

은혜롭고 평화로운 동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들이 희미하게 옅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표정만 봐도 읽히는 아픔을 애써 무시하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나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故 이어령 선생님은 생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라고 피력하셨는데 정말로 그렇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너무 춥게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타인과 나를 돌보지 않았고 나의 상실에 대해서도 생각해주지도 않았던가.

집중을 핑계로 쓰고 있었던 헤드셋을 벗어본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소음(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다시 들어본다. 옆 테이블 손님도 서울로 상경을 하셨구나, 집값도 물가도 참 많이 올랐구나. 맞아요,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게 아니었네요. 물론 대놓고 대화를 들었던 건 실례이니까 마음속으로만 회신을 보내본다. 회신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추신은 달지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을 씻어 내리고자 커피를 한잔 더 마셨다. 처음으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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