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Oh, Happy Together - 오해피투게더

큐레이터 문혜영

2024.06.11 16:54

한창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노력한 만큼만 대우받고 싶은 것이 언제부터 욕심이 되었던 것인지, 나의 삶과 시간을 존중받을 수 있는 곳에 서류를 넣으면 대개는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지난 달 토요일, 아주 어렵게 얻은 면접 기회였다. 하필 그날은 장마철인가 싶을 정도로 비가 오는 날이었고 앞서 헬스장에 다녀온 탓인지 피로도가 컸다. 도합 2시간 정도 소요되는 AI면접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날려버렸다.

 

하루 종일 먹지 못한걸 뒤늦게 깨닫고 밖을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와플을 먹을까? 식단 관리 중이니 그래도 샐러드를 먹어야할까? 아니면 잘한 것도 없는데 역시 집밥을 먹어야했을까? 여러 고민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비 오는 날 한정된 시야로 내가 볼 수 있는 건 눈높이에 있는 것이다. <오 해피 투게더!>라는 빨간 간판 밑으로 아주 커다란 <빵> 이라는 글자, 그리고 아주 놀랄만한 문구를 발견했다. <빵 800원>.

요즘 같은 고물가시대에 이 가격을 보고 망설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넛은 700원, 일반 빵은 800원, 케이크는 7,000원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누구라도 멈칫할만한 가격에 먼저 고민하게 된다. 가게 내부는 비록 포장 주문만 가능한 작은 공간이지만 지금껏 이 가게가 동네에서 버텨온 세월을 보여주는 사료가 여러 가지 있다. 옛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붉은색 간판에 노랗고 뽀얀 조명, 가끔 정적을 깨는 제빵기 소리, 그리고 이미 많은 손님이 다녀가신 것인지 1-2개밖에 남지 않은 트레이. 하루라도 빨리 이직하고 싶은 나를 혼내기라도 한 것처럼, 이 자리를 오래 지켜온 것들이 나를 맞이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집중해서 그랬던 건지 배가 고파서 그랬던 건지, 평소엔 손에도 대질 않는 ‘사라다빵’에 제일 먼저 손이 갔다. 투박하지만 바삭하게 튀긴 겉부분과 포장이 터질 듯 채워 넣은 야채 덕분이었다. 1,500원이라는 착한 가격도 한몫했다. 얇은 반죽을 겹쳐야 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크로와상도, 커피랑 종종 먹곤 하는 머핀도 각각 천원대. 빵을 4개나 담았는데도 5천원 정도라 아쉬웠던 면접도 금방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미 품절된 소보루빵과 콘브레드도 언젠간 먹어보리라 다짐하고 가게를 나섰다.

가히 나의 ‘최애’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도입부에는 주인공 키키의 어머니가 마법 물약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류머티스 관절염에 잘 돋는다는 약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로 마음가짐이다. 도중에 집중력을 잃으면 펑 하고 폭발해버리지만,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만들면 성공이다.

 

집으로 돌아와 물도 없이 사라다빵을 삼키며 이상하게 저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은 유독 비가 왔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기분대로 행동해버린 내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분명 최선을 다한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미안한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케첩과 야채의 조합에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고 생각해버렸다. 오후 4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 긴 공복이었던 탓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해피’해지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나도 애니 속 한 장면처럼 다시 도전했을 때 꼭 성공해보자 다짐하며 더 이상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로 한다.

저렴한 가격에 매일 갓 구운 빵을 파는 <오해피투게더>. 도너츠, 케이크, 식빵 등 여러 종류의 빵이 있고 샌드위치도 있어서 식사를 해결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투박하지만 세월이 주는 정감 있는 분위기 덕분에 마음까지 채워지는 곳이었다. 집에서 먹을 빵을 사거나 여러 명이 먹을 간식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분명 이곳을 거치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곳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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