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산산
2024.06.04 21:31
예전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정말 많았다.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했고, 코맥 매카시를 좋아했고, 테드 창을 좋아했다. 책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글을 쓰는 것도 좋아했다. 공모전에도 여러 차례 투고했다. 좋은 소식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마냥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절이었다. ‘예전’에는 말이다.
나도 어느덧 ‘예전’ 같지 않은 것들이 차츰차츰 늘어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예전과 달리 이젠 치킨이나 피자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종일 뱃속이 더부룩하다. 예전과 다르게 배가 나오기 시작한 탓에 티셔츠는 되도록 오버핏으로 입는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버겁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탓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버거워진 것이, 다름 아닌 글쓰기다. 삼십 대는 살면서 더 많은 일을 겪게 될 나이이지만, 동시에 이십 대를 지나치는 동안 겪은 실패들이 축적된 나이이기도 하다. 이십 대의 나는 끝내 글쓰기로 성공하지 못했다. 글쓰기로는 이십 대 내내 실패했다. 실패한 기억들을 무게추처럼 주렁주렁 매단 채 계속 글을 쓴다는 건, 예전과 달리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은 실패의 무게를 이겨내기엔 쉽게 피로해진다.
그렇게 무작정 뒤로 미루는 나날들을 보냈다. 퇴근 후에 읽으려고 했던 책을 주말로 미루고, 막상 주말이 오면 다음 주로 미루고, 오랜만에 글을 써보겠다며 키보드 앞에 앉았다가, 첫 문장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손을 떼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카페 아일랜드 4199였다.
‘방문했다’보다는 ‘발견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간판에 그려진 비행기를 보니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우리는 화자가 사막에서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의 감정은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어린왕자의 심정은 알지 못한다. 사막 한복판에서 비행기를 발견했을 때 어린왕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카페는 2층에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사장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 분명한 시들이 걸려 있었다. 모든 시들의 하단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마침내 찾아간, 아일랜드 4199 커피.’ 시 한 편에 계단을 두어 개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카페 정문이었다.
훤히 트인 통유리창, 넓은 매장, 섬처럼 여유롭게 간격을 두고 놓여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 테이블 하나에는 오래된 타자기 같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기둥 하나에는 사진과 손그림들이 앨범처럼 붙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시화(詩畵)가 놓여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단순히 공간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 놓인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사장님이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따라서 사장님께선 자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놓으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일랜드 4199는 더 많은 물건들이, 그리고 더 많은 손님들이 들어올 공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나중에 찾아본 인터뷰에 따르면 사장님께선 은평구 토박이이자 본래 20여 년간 광고계에 종사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다 건강 문제로 퇴사를 하신 뒤 ‘광고인’에서 ‘커피인’으로 변신하며 차린 카페가 바로 아일랜드 4199였다. 광고 회사를 차리게 되면 사용할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두 번째 인생의 간판이 된 것이다.
사장님께선 주문을 허투루 받지 않으셨다. 나는 원두의 마이크로 랏(Micro Lot)이 무엇인지 간단한 설명을 들었고, 산미가 있는 커피가 입에 맞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떤 원두가 알맞은지 추천도 받았다. 사장님은 표정도 목소리도 무척 밝으셨다.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는 사장이 아닌, 우연히 만난 타인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나는 문득 커피를 한번 좋아해 볼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버겁게 느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읽으려고 하면 책의 두께와 무게가 버겁고, 웹소설을 보려고 하면 100화가 훌쩍 넘어가는 회차가 버겁고, 게임을 하려고 하면 몇 시간이고 이걸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게 버겁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장 버거운 건 글을 써보려고 할 때마다 역시나, 이번에도, 또다시, 실패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짊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장님께 여쭤보고 싶었다. 익숙한 일을 접어두고 좋아하는 것에 투신하는 게 버겁지 않으셨나요?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것이 나에게 실패만 안겨주는 건 아닌지 두렵진 않으셨나요? 초면에 꺼내기엔 다소 무례한 질문이라 입에만 담아두었는데, 사장님께서 먼저 다가오셨다. 그리고 내 앞에 주문하지도 않은 커피 한 잔을 내려놓으셨다. 다른 손님들의 커피를 내리다가 같이 내렸으니 한번 맛보시라면서.
한 모금 마시자마자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커피가 원래 이렇게 깔끔한 맛이 나는 거였어요? 말주변도 없으면서 사장님께 민망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사소한 순간조차 놓치지 않고 사장님은 커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셨다. 새로 내린 커피에 사용된 원두는 예멘 모카였다. 예멘 모카.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커피를 좋아하게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예멘 모카만큼은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사장님께 묻고 싶었던 질문들에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사장님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사장님께선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버겁든, 두렵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좋아하고 계신다는 것을. 단지 그뿐이라는 것을.
‘좋다’는 형용사지만 ‘좋아하다’는 동사다. ‘버겁다’는 형용사지만 ‘계속하다’는 동사다. 형용사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내게 마냥 좋던 것이 내게 버거운 것이 되듯이. 그러나 동사는 내 선택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버겁더라도 좋아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좋아하다’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인가 보다. ‘노력하다’, ‘힘쓰다’, ‘견뎌내다’ 같은 동사.
이번 주말에는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썼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고, 이십 대부터 해왔던 글쓰기인 만큼 그만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나간 실패들이 불쑥 떠올라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대로 백스페이스를 꾹 누를까 잠시나마 고민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일랜드 4199를 떠올렸다. 예멘 모카를 떠올렸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계속 좋아해온 일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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