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숨비소리와 물숨의 경계 - 숨비로와

큐레이터 정서은

2024.06.04 21:14

배달 알림 소리가 카페 안의 적막을 깼다. 한가하던 중 타이밍 좋게 들려온 반가운 소리였다. 배달 어플을 켜자마자 요청사항 칸의 “다시 돌아 와 주셔서 너무 좋아요.” 라는 짧은 메모가 포스기 화면 위로 떠올랐다. 화면 너머 손님의 즐거워하는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저도요. 다시 돌아와서 기뻐요.’ 하며 작게 대답을 했다. 손님의 마음에 이백프로 공감하는 마음이다.

내가 약 한 달 째 근무 중인 카페 ‘숨비로와’는 이전에 한 번 오랫동안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친구 소개로 한 번, 혼자서 공부하러 한 번, 그리고 동료를 데리고 한 번, 총 세 번 방문한 게 다라 큰 감흥은 없다. 다만 은평구에 드문 문화 공간이 사라진 게 아쉬워서 가게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안을 흘끔 들여다보곤 했다. ‘동네 미술관을 밀어내고 얼마나 좋은 가게가 들어오나 두고 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가게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마지막 날의 모습 그대로 였다. 자리가 팔리지 않은 건지, 사실은 문을 닫은 게 아니고 리모델링 중인 건지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카페는 내 관심 속에서 잊혀져 갔다.

카페가 내 시야에 다시 들어온 것은 내가 첫 취업 후 입사 날짜를 기다리며 할 아르바이트 자리 를 구할 때였다. 구인사이트의 수많은 구인글 사이에서 ‘숨비로와’ 네 글자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의 공백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카페에서 일할 바리스타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이끌리듯 지원서를 제출했고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이 손님에서 카페의 직원이 되었다.

재개장 소식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건지 카페는 항상 고요했다. 처음엔 좋았지만 금세 가만히 있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심심해진 나는 카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그 ‘숨비로와’라는 이름 말이다. ‘숨비소리’라는 단어에 서 따온것이라고 한다.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물질 후 내는 소리를 말한다. 해녀들은 약 1분에서 2분 가량 잠수를 하는데, 이 때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을 가진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소리는 휘파람 소리를 닮았다고 한다. 나는 곧 일을 시작하고 맞은 첫 손님이 아직 연습이 잘 되지 않은 브런치를 시켜 곤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심지어는 배달 주문도 겹쳐서 정말 바빴다. 한바탕 정신없이 주문을 쳐내고 난 후 내쉰 한숨이 내겐 숨비소리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손님께 나가기 전에 급히 연습삼아 만들어본 아보카도 에그 샌드위치가 정말 맛있었지. 일반적인 에그샌드위치와는 다르게 유자청과 오일을 섞은 독특한 소스가 올라가 확실한 차별점이 있는 메뉴이다. 곁들여 마실 음료로는 솔티브라운 라테를 추천한다. 입안이 빈틈없이 풍부한 맛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다시 ‘숨비소리’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숨비소리의 반댓말은 무엇일까? 바로 ‘물숨’이다. 그것은 ‘물속에서 쉬는 숨’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해녀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복을 따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자신의 숨의 한계를 넘어버리게 될 때 쉬는 생의 마지막 숨이다. 그래서 해녀 삼촌들은 첫 물질을 시작하는 애기 해녀에게 ‘물숨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첫째로 준다고 한다.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다. 숨비소리와 물숨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숨을 한계 아슬아슬하게 참아내고 바다 위로 올라가면 숨비소리를, 한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물숨을 쉬게 된다. 그 경계를 찾는 것이 어려운 거겠지만.

어쩌면 내가 이 카페에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인생에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물숨을 쉬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1인분을 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던 내 모습이, 한계가 찾아왔음에도 바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 가는 해녀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취업 후 모두가 지금뿐이라고, 지금밖에 놀 시간이 없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를 만류해왔다. 정착금은 사실 정부에서 지원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몸을 가만히 뉘일 수 없었다. 관성이었다. 심지어는 부모님도 만류를 했다. 이제는 놀아도 된다, 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무색하게도 나는 단어 하나에 이제까지의 관성을 거스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카페를 구석구석 훑었다. 어느새 카페에는 새 간판도 달리고 파도를 닮은 푸른색 차양도 설치되었다. 긴 재충전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제 대로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게 1년간의 휴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숨비로와’는 그 이름처럼 숨비소리와 물숨의 적절한 경계를 찾은 듯했다. 나는 곧바로 매니저님께 문자를 보냈다. 취업을 하게 되어 근무가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을 담은 길고 정중한 메세지였다. 물론 2주간의 노티스 기간을 두었다. 나는 물숨의 코 앞까지 갔다가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일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고들 한다. 지금은 어떻게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시기인 것이다.

 

카페는 여전히 소란스럽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차와 커피를 내어주고,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남은 기간 곁을 지키고 있다. 이 작은 공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카페를 방문하는 모두가 물숨의 바로 앞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숨비소리를 낼 수 있도록, 나는 마지막까지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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