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이웃한 포근한 싱그러움 - 근린커피
큐레이터 박지현
2024.06.04 19:14
흔한 비유처럼, 사람 간의 관계가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 같은 것이라면 썩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진 못 했던 때가 있었다. 온전한 마침 없이 마침표가 찍히고, 남아있다고 생각했으나 더이상 쓰고 넘길 여분의 백지가 없던 때. 언젠가 찾아올 끝맺음이 다가옴을 어렴풋 느끼면서도 일상을 위해 걸음을 내딪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며 매일 오가던 길에서 피어오르던 생각과 기분의 잔재가 짙게 남아 그 길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던 때, 나는 덜컥 이사를 결심했다. 낮게 나는 비행기를 질리도록 바라볼 수 있었던 곳, 어김없이 강과 길을 따라 벚꽃을 찬연히 피워내다 조금씩 지던 계절에 그곳을 떠나 한강 너머 지금의 동네 연신내에 닿았다.
새로 이사하는 곳 역시 산책하기 좋은 하천이 가까이 있었으면 했다. 이사 2주 전 관련 서류처리를 위해 미리 동네를 찾았다가 일을 마친 뒤 따릉이를 타고 15분이면 갈 수 있는 불광천으로 향했다. 구름이 껴 약간은 어둑한 평일 오후 네 시. 춘분을 겨우 지나 녹음 짙은 풍경을 기대하긴 어려웠지만 들풀이 올라오고 있었고, 천변을 따라 가까이 늘어선 건물과 가게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주는 하천이었다. 각자의 속도로 산책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걷다 보니 다리 위로 식물이 가득한 카페가 올려다보였다. 열려있는 2층 창문 안으로 엿보이는 따뜻한 목재 천장과 조명. 한 눈에 이끌려 찾아간 그곳의 이름은 ‘근린커피’였다. 이 동네에 와서 가보는 첫 공간이었다.
강아지를 동반해 입구 앞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을 지나 가게에 들어서니 밝은 인사말이 들린다. 내부에서 보니 초록의 기운이 더욱 가득 차 창 너머 회색빛 날씨도 싱그럽게 감싼다. 메뉴 앞에서 근린라떼라는 시그니처스러운 메뉴와 조금 고민하다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1층도 너무 예쁘지만 밖에서 보이던 2층 창가 자리에 가서 풍경을 내려다보고 싶어. 주문한 커피를 받아 계단을 올라가니 곳곳에 개인작업을 하기 좋은 좌석이 많았다. 먼저 온 손님들이 각자 본인의 작업에 조용히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갖고있던 태블릿을 꺼내 캘린더를 작성하고, 필기를 정리하고, 이따금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이 동네의 풍경 속에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크림과 아메리카노가 섞이는 맛이 부드러웠다.
이사를 마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날의 저녁, 다시 불광천에 갔다. 이곳의 벚꽃은 지고난 뒤였으나 망울망울 만개한 겹벚꽃이 반겨준다. 이번엔 따릉이를 타고 한강공원까지 내려가보자. 난지까지는 40여분 정도가 걸렸고, 탁 트인 한강 가까이 있는 계단 공터를 발견해 자전거를 멈췄다. 이사 오기 전 반대편 강서에서 바라보던 월드컵대교를 보고, 전진하는 작은 별처럼 날아가는 비행기를 봤다. 가까이서 보던 익숙한 건물들의 야경이 한강의 윤슬에 뒤섞여 일렁일렁. 이제 건너에서 바라보던 풍경에 내가 있고, 이곳에서 지난 동네를 멀찍이서 바라본다. 초연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공간 감각 없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발걸음이 나만의 감각을 만들고, 머릿속 지도를 연결해 채워가는 일은 환기가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근린커피에 들러 잠시 쉬어가자, 근린커피에는 커피를 마시긴 주저될 때 고르기 좋은 티 메뉴가 다양한 편이다. 얼그레이 티 라떼에 소금빵을 곁들여 부족했던 식사를 보충했다. 밤의 근린커피는 조명과 초록이 더욱 빛나며 따스한 공간이 되어준다. 일상에 환기가 필요하다면, 불광천을 산책하다 근린커피에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낮과 밤, 어느 계절이든 근린커피는 여느때와 같은 싱그러움으로 당신을 맞이해줄 것이다. 이곳의 이름처럼, 근린커피가 당신의 마음과도 이웃한 공간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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