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핸드메이드 여름 - 연희동 멜레코테젤라또

큐레이터 신승아

2024.09.11 01:50

여름의 추억은 유독 강렬하다. 손끝에 대충 묶은 봉숭아 물, 선풍기 한 대를 틀어놓고 대나무 발 위에서 대자로 뻗어 자던 기억. 이맘때면 엄마는 플라스틱 막대가 달린 아이스 트레이를 하나씩 사 모았다. 깨끗이 씻어 말린 제철 과일을 믹서기에 갈아 깊게 파인 홈 안으로 부은 다음 틀에 딱 맞는 막대를 꽂아 냉동실에 얼리면 수제 아이스크림이 완성된다. 이게 다 정성인 건데, 그땐 몰랐다. 자두는 너무 셔서 싫었고, 수박은 오이 향이 나서 별로였고, 복숭아는 부드러운 백도가 아닌 꼭 천도복숭아를 쓰는 게 별로였다. 이것보단 단지 아이스크림을 마구 퍼먹고 싶었을 뿐이었다.

 

‘멜레코테 젤라또’는 주택가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부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온 젤라띠에레가 손수 만드는 젤라또라니! 우리말론 장인 정신이 가득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게는 앉을 자리가 마땅히 마련되지 않은 작은 매장이다. 대부분 간단히 자리에서 먹고 가거나 포장 손님이다. 대신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친절한 사장님이 궁금하면 맛볼 수 있으니 편하게 얘기해달라고 전하신다.

 

가게 이름이기도 한 멜레코테시나몬과 함께 끓인 사과 디저트를 뜻한다 “이거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라는 나의 말에 작은 스푼에 쫀득한 젤라또가 돌돌 감아져 손에 건네졌다. 앞전에 맥주를 한 잔 마셔 알딸딸한 나는 마음의 소리를 내며 한 입 한다. 진한 사과의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 차며 눈이 번쩍 뜨였다. 톡 쏘며 후반부에 치고 나오는 시나몬 향도 좋고, 부드럽고 시원한 원유의 풍미도 느껴진다. 빈손으로 나가기엔 아쉬웠다.

 

멜레코테 젤라또엔 총 4가지의 맛이 있다. 피스타치오는 직접 골라 만드는 수제 페이스트를 사용하고, 초콜릿은 천일염이 들어간 솔티드 젤라또로 단짠의 조화가 좋다. 우유 베이스에 초콜렛 칩이 들어가는 스트라차텔라도 낯설지만 도전할만한 맛이다. 딸기 중에 제일이라는 설향 딸기와 태국 망고를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는 과일셔벗 소르베로 맛볼 수도 있다.

 

우리가 갔을 땐 시즌을 맞아 수박과 시소를 더한 소르베가 출시된 직후였다. 어릴 땐 수박씨가 그렇게 싫었는데 요즘은 없어서 못 먹는다. 나는 냉큼 수박시소와 스트라차텔라를 선택했다. 나의 짝꿍은 피스타치오만 보면 눈이 반짝인다. 우리가 고른 아이스크림이 반씩 한 컵에 쌓이기 시작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푼 베이지색 아이스크림 위에는 예쁜 병에 담긴 꿀이 한 바퀴 둘러진다. 뭉근한 사과의 맛이 담긴 멜레코테였다. 

 

양 손에 젤라또 컵을 들고 바로 앞 공원으로 향했다 정자에는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들과,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바삐 오가는 아이들이 있다. 꺄르륵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얼마 만에 들어본 건지. ‘요즘 애들도 배라의 맛보기 스푼을 알까?’라고 말문을 떼며 시선은 놀이 기구에 고정하고 손으론 크게 한 숟갈을 뜬다. 농축된 우유의 단 맛과 쌉쌀한 다크 초콜릿이 아작아작 씹힌다. 피스타치오는 진하다 못해 페이스트를 먹는 거 같았다. 목이 타는 마음에 옆쪽 빨간 소르베를 한입 가득 문다 얼음알갱이를 한 번 더 갈아 굳힌 듯 사각거리는 수박의 맛과 향긋한 풀 향이 섞인다.  우리는 말없이 한 컵을 뚝딱 비웠다. 손에 약간의 끈적함만을 남긴 채 사라진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여름은 해가 긴 만큼 늦게까지 밖에서 놀기 좋았다. 아파트 뒤 공터에서 놀다가 목이 마르면 집으로 돌아와 냉동실을 열었다. 엄마가 얼려둔 트레이를 꺼내 기둥 부분을 움켜쥐면 손바닥이 빨개지며 얼얼한 냉기가 올라온다. 그때 막대를 잡고 당기면 매끈하게 언 수제 아이스크림이 쑥 빠진다. 마트에서 산 것보다 부드럽지 않고 달지도 않다. 그럼에도, 새콤달콤한 과일의 맛은 그대로 녹아있다. 적어도 나는, 핸드메이드와 로컬의 작은 카페에게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투박해도 정겹게, 손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드는 것. 연희동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눈길이 가는 곳이 너무 많다. 그래도 식사와 카페 사이 잠깐의 여유를 젤라또로 채워 보는 건 어떨까? 짧은 순간 녹아내릴 진한 행복이 ‘멜레코테 젤라또’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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